강진규 세르딕 대표
"안전모 미착용자가 확인됐습니다."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은 작업자가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경고 메시지가 떴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복합 환경 센서'가 이를 감지해 안전감독관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 것이다. 감독관이 들고 있던 태블릿 PC에 공장 상황이 그대로 떴다. 화면에는 공장 내부가 3차원(3D) 화면으로 펼쳐졌다. 작업자 위치와 동선은 물론 주변 설비와 잠재적 위험 요소까지 한눈에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었다.
이 기술은 국내 스타트업 세르딕이 개발한 인공지능(AI) 솔루션 '인텔리전트 시뮬레이션(Intelligent Simulation)'의 일부 기능이다. 산업 설비 관리와 현장 안전 관리를 중심으로 위험 지역 모니터링, 사고 대응 시나리오 분석까지 아우르는 솔루션을 구독 형태로 제공한다. 세르딕은 2021년 설립 이후 제조 현장과 산업시설을 중심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이 솔루션의 핵심은 '디지털 트윈(Digital Twin)' 기술이다. 디지털 트윈은 실제 공간과 설비를 가상공간에 그대로 옮겨, 현장에서 들어오는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분석하고 예측하는 기술이다. 가상현실(VR)이 현실과 분리된 공간을 구현하고, 증강현실(AR)이 현실 위에 정보를 덧붙이는 방식이라면, 디지털 트윈은 현실과 가상을 하나의 시스템처럼 연결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 덕분에 디지털 트윈은 24시간 쉬지 않고 현장을 살피는 '가상 안전감독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받는다. 산업현장을 바꿀 혁신 기술을 인정받아 방송통신위원회와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주관한 '2025 코리아 위치기반서비스 스타트업 챌린지 공모전'에서 공공·안전형 분야 대상을 수상했다.
세르딕을 창업한 강진규 대표는 대학에서 지구환경과학을 전공하고 파라메트릭 디자인(Parametric Design·변수에 따라 형태나 결과가 자동으로 변하도록 설계)과 빌딩 정보 모델링(BIM ·정확한 가상 건물 모델을 생성하는 기술)을 공부하며 공간과 데이터의 결합에 관심을 키워왔다.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그는 산업 현장의 규모와 여건에 관계없이 적용할 수 있는 AI 기술을 통해 더 많은 작업자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호환성 높인 디지털 트윈
세르딕이 제공하는 디지털 트윈의 강점은 '저비용'과 '연계성'이다. 산업 현장에 센서를 부착하는 과정 외에는 별도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없다. 그만큼 초기 도입 비용 부담이 크지 않다. 의뢰 기업은 CAD(컴퓨터지원설계) 도면과 현장 사진·영상 등 기본 자료만 제공하면 된다.
정확도를 높이기 위한 장치도 갖췄다. 세르딕
은 기업이 제공한 정보를 더 정밀하게 3차원으로 구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비주얼 슬램(V-SLAM) 기술을 적용한 기기를 개발했다. 카메라로 주변 환경을 인식해 스스로 지도를 생성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휴대가 가능한 이 기기를 들고 공장 내부를 이동하면 복잡한 구조와 설비까지 세밀하게 스캔할 수 있어 공장 3D 모델 구축이 훨씬 수월하다.
운영 방식도 문턱을 낮췄다. 세르딕은 별도의 사내 서버를 구축하지 않아도 디지털 트윈을 도입할 수 있도록 웹(Web) 기반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설치 없이 인터넷으로 접속해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사용할 수 있는 구조다. 디지털 전환(DX)이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호응이 나오는 이유다.
웹 기반 디지털 트윈을 선택한 배경에 대해 강 대표는 "중소기업이 디지털 전환 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각 기업이 스스로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관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는 산업과 설비를 어떻게 AI와 연계해 디지털 전환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력·물자 관리도 디지털 트윈으로
디지털 트윈은 한정된 인력을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힘을 발휘한다. 넓은 산업 현장을 동일한 방식으로 반복 점검하는 일은 쉽지 않다. 현장 근무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질 위험도 있다. 반면 디지털 트윈을 활용하면 각 구역의 위험 요소와 점검 우선순위를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어 필요한 곳에 인력을 집중 배치하고 더 효율적인 안전 관리가 가능해진다.
이 같은 특성은 세르딕의 디지털 트윈 서비스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르딕의 시스템은 공장 내 작업자들이 작성한 일지를 바탕으로 점검이 시급한 구역이나 향후 위험이 예상되는 지점을 3차원 공장 모델 위에 실시간으로 표시해 준다. 작업자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현장을 이동할 수 있고 감독관은 우선 점검이 필요한 구역을 한눈에 파악해 즉각적인 조치를 계획할 수 있다. 현장 관리가 더 체계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뤄지는 구조인 것이다.
활용 범위는 안전관리에 그치지 않는다. 공장 내 수많은 자재와 부품이 어디에 있는지, 어느 구역에서 사용 중인지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물자 관리 정확도도 높아진다. 세르딕은 여기에 더해 현장 근로자의 작업 과정과 물자 현황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자동으로 정리·기록하는 워크오더(Work Order·자동 보고서 생성)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고 있다. 작업 결과를 일일이 정리해야 했던 현장의 부담을 줄이고 근로 효율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높이는 방식이다.
처음부터 디지털 트윈에 대한 반응이 좋았던 것은 아니다. 자칫 '근로자를 감시하는 기술'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부족한 인력을 보완하는 도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세르딕의 기술은 산업 현장 밖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까. 강 대표는 "안전이 최우선인 환경이라면 어떤 곳에서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다"며 "사람들이 밀집한 상업시설이나 공공건물에서도 대피 동선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위험 상황을 사전에 감지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산업 현장을 중심으로 기술이 적용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일상 곳곳에서 생활안전을 지키는 데 충분히 쓰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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