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수제 도시락 사업을 시작한 '온기담' 대표는 브랜드를 키우고 인스타그램 팔로어도 2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2024년 초 느닷없이 내용증명이 한 통 날아왔습니다.
'귀사가 사용 중인 '온기담' 상표는 당사가 2023년 10월 특허청에 정식 등록한 상표입니다. 즉각 사용을 중단하지 않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대표는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4년 동안 애지중지 키워낸 브랜드인데 억울하게 빼앗기는 걸까요?
'등록주의'에도 예외는 있다
우리 상표법은 기본적으로 먼저 등록한 사람이 이긴다는 '등록주의'를 택합니다. 특허청에 먼저 출원해서 등록을 마친 사람이 원칙적으로 상표권자로 인정받습니다. 억울하게 느껴지지만 이러한 원칙이 있어야 분쟁도 줄어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우리 법은 '등록주의' 원칙에 중요한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바로 선사용에 따른 상표 사용권, 줄여서 선사용권입니다.
상표법 제99조(선사용에 따른 상표를 계속 사용할 권리)에 따르면 타인의 상표 등록 출원 전부터 부정경쟁의 목적 없이 그 상표를 계속해 사용하고 있었고 상표권자의 등록 출원 시점에 국내에 널리 인식된 경우 해당 상표를 계속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쉽게 말해 '내가 먼저 쓰고 있었고 소비자도 알고 있었다면 등록을 못 했더라도 계속 써도 된다'는 뜻입니다.
선사용권, 아무나 주장할 수 없다
문제는 선사용권이 쉽게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단순히 '내가 먼저 썼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법원이 요구하는 기준은 꽤 까다롭습니다. 핵심 요건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상표 등록 출원일 이전부터 사용했을 것. 내용증명을 보내온 상대방이 특허청에 출원한 날짜보다 내 사용 시점이 앞서야 합니다. 이 날짜를 증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둘째는 해당 상표가 국내에 널리 인식돼 있을 것. 단순 사용이 아니라 소비자 사이에서 '이 브랜드 하면 이 사람'이라는 인식이 형성돼 있어야 합니다. 법원은 이를 '주지성(周知性)'이라고 부릅니다.
대법원은 2015. 10. 15. 선고 2013후1207 판결에서 선사용 주장을 인정하면서 '국내 전역에 알려질 필요는 없고 일정한 지역 범위에서라도 수요자들에게 알려져 있으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소규모 브랜드에는 숨통이 트이는 판결입니다.
선사용권 외에 또 다른 무기, 무효심판
선사용권이 '계속 쓸 권리'라면, 무효심판은 상대방의 상표 등록 자체를 없애는 방법입니다. 상표법 제34조는 등록을 받을 수 없는 상표를 열거하고 있습니다.
'타인의 상품을 표시하는 것이라고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는 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로서 그 타인의 상품과 동일·유사한 상품에 사용하는 상표'(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9호) 즉 상대방이 등록을 했더라도 그 등록 자체가 위법한 것이라면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무효심판이 인용되면 그 상표 등록은 처음부터 없었던 것으로 됩니다.
또 다른 방패, 부정경쟁방지법
선사용권과 무효심판은 상표법이 제공하는 무기이고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부정경쟁방지법)이라는 또 다른 방패가 있습니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가목은 국내에 널리 알려진 타인의 상품 표지(브랜드명·로고 등)와 혼동을 일으키게 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규정하고 사용금지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합니다. 상표 등록 여부와 관계없이 소비자가 내 브랜드라고 인식하고 있었다면 보호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중요한 것은 상표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은 함께 쓸 수 있다는 점입니다. 헌법재판소도 두 법률의 병행 적용을 인정하고 있습니다.(헌법재판소 2001. 9. 27. 선고 99헌바77 결정) 선사용권 주장과 부정경쟁방지법에 따른 구제수단을 동시에 검토하면 법적 대응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4년을 키운 브랜드는 서류 한 장에 사라지지 않습니다. 법은 먼저 등록한 사람의 손을 들어주기도 하지만 땀 흘려 쌓아온 시간과 신뢰를 외면하지도 않습니다. 권리를 포기하기 전에 법을 내 편으로 만드는 방법을 먼저 찾아보세요.
억울한 내용증명에 대한 스텝별 실전 대응법
억울한 내용증명을 받았다면 다음 순서로 대응하세요.
STEP 1. 증거부터 모으세요.
누리소통망(SNS) 최초 게시일, 고객 후기 캡처, 언론 보도, 팝업 행사 자료 등 '내가 언제부터 썼는지'를 입증할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세요.
STEP 2. 상대 등록 상표를 확인하세요.
특허청 키프리스(kipris.or.kr)에서 상대방이 등록한 상표의 출원일, 지정 상품·서비스 분류를 확인하세요. 내 업종과 상품 분류가 다르다면 그 자체로 침해가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STEP 3. 무효심판 청구 가능성을 검토하세요.
상대방의 등록 출원일 이전에 내 상표 사용이 입증된다면 특허심판원에 무효심판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STEP 4. 내용증명에 바로 굴복하지 마세요.
서둘러 브랜드를 포기하거나 사용 중단 각서를 쓰기 전에 반드시 법률 검토를 받으세요. 한번 서명한 합의서는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장변의 돈이 되는 Tip
내 브랜드 지키려면 이것부터
1. 브랜드를 쓰기 시작하는 날, 출원하세요. 브랜드 등록 비용은 10만 원 내외입니다. 내 브랜드를 잃고 찾아오는 비용보다 훨씬 싸고 효과적입니다. 사업자 등록과 동시에 상표 출원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2. 증거는 지금 이 순간에도 쌓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배달 플랫폼의 가입일과 게시물 날짜는 훌륭한 증거입니다. 캡처해서 별도로 보관해 두세요.
3. 유사 상표 모니터링을 주기적으로 해보세요. 특허청 키프리스(kipris.or.kr)에서 내 브랜드명과 유사한 상표가 새로 출원되면 알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분기에 한 번은 검색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4. 상표권 분쟁, 초기 대응이 승패를 가릅니다. 합의나 사용 중단 각서에 서명하면 이후 무효심판이나 선사용권 주장이 훨씬 어려워집니다. 상대방의 손해배상 청구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장영화
기업의 시작과 성장을 돕는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이자 창업 15년 차 기업가.
[출처] 대한민국 정책브리핑(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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