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화 박사팀, 방사성동위원소 활용 '초장수명 SiC 반도체 전원 플랫폼' 실증
한국전기연구원(KERI) 차세대반도체연구센터 서재화 박사팀이 국립경국대학교 윤영준 교수팀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우주와 극지 등 극한 환경에서 충전이나 교체 없이 50년 이상 스스로 전기를 만드는 '탄화규소(SiC) 반도체 기반 베타전지'를 국내 최초로 실증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적인 에너지 분야 최우수 학술지인 '인터내셔널 저널 오브 에너지 리서치(International Journal of Energy Research, JCR 상위 3.6%, 해당 분과 2위)'에 논문이 게재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베타전지는 방사성 물질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전자(베타선)를 반도체가 흡수해 전기로 바꾸는 차세대 전원 장치다. 빛을 받아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와 비슷하지만, 태양 대신 방사성 물질을 에너지원으로 삼는다. 그렇기 때문에 햇빛이 전혀 닿지 않는 우주, 깊은 바다, 땅속 국방 감시 환경 등에서도 날씨와 온도에 상관없이 아주 오랫동안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기존 기술은 전기를 모으는 효율이 낮았고, 국내에는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다루며 성능을 잴 수 있는 기반 시설이 부족해 기술 실증에 큰 제약이 따랐다.
KERI는 이러한 한계를 넘기 위해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열과 방사선에 훨씬 강한 차세대 소재인 '탄화규소(SiC)'를 핵심 소재로 선택했다. 여기에 방사선을 전기로 바꾸는 효율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반도체 구조를 최적으로 설계(p-i-n 다이오드 구조 방식)하여 독자적인 원천 소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원천 기술 확보를 마친 연구팀은 가장 큰 산이었던 실제 방사성 물질 실증에 돌입했다. 까다로운 안전 기준을 통과해 실제 베타선 원료인 '니켈-63(Ni-63)'을 확보하고, 국내 최초로 전용 측정 설비를 구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와 방사성 물질을 결합한 결과, 실제 전력이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했으며, 이 전기로 저전력 LED 빛을 밝히는 시제품까지 완성했다. 이는 방사성 물질(Ni-63)의 수명 특성을 고려할 때, 아주 적은 전력(ex: 동전형 리튬전지 수준)을 필요로 하는 기기에서 전지 교체 없이 50년 이상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또한 이 출력 성능은 과거 국내에 보고된 실험 결과보다 무려 6만 배 이상 향상된 수치로, 국내 역사상 최고 수준이다.
나아가 방사성 물질을 반도체 표면에 빈틈없이 얇고 고르게 바르는 이상적인 방식을 적용할 경우, 0.85 mW/cm²(제곱센티미터당 0.85 밀리와트)의 출력전력 밀도와 단위 셀 기준 20 μW(20 마이크로와트) 이상의 전력 발생이 가능하다는 점도 추가로 확인했다. 이는 기존 국내 단위 셀 출력 목표치 대비 4,200배 이상 높은 수치다. 사용된 니켈-63의 수명을 고려하면 이론상 최대 100년까지도 구동할 수 있는 엄청난 에너지 규모로, 전지의 크기를 키우고 여러 개를 쌓는 집적화 공정이 더해지면 해외 선도기업들의 상용화 제품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원천 기술력을 확보한 셈이다.
시제품 제작 이후, 연구팀은 기술의 완성도와 상용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AI 기술과 극한 환경 테스트를 전격 도입했다. 국립경국대학교 윤영준 교수팀과의 협업을 통해 AI 예측 모델을 구축, 실제 전지의 출력과 전압을 98~99%의 높은 정확도로 예측해 내며 앞으로의 최적화 설계 시간을 크게 줄였다. 또한 우주선이 겪을 수 있는 강력한 방사선 환경을 모사하기 위해, 15 MeV(메가전자볼트)급 고에너지 양성자를 전지에 직접 쪼이는 실험을 국내 최초로 수행했다. 15 MeV는 1,500만 볼트의 전압으로 가속된 입자가 때리는 수준으로, 우주 한복판에서 탐사선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방사선 폭우'를 맨몸으로 견뎌내는 것과 같은 극한의 환경이다. 연구팀은 이처럼 가혹한 조건에서도 전지가 어떻게 버티는지를 수치화하여, 실제 우주 임무에서도 안전하게 쓰일 수 있는 신뢰성 열화 데이터를 정량적으로 확보했다.
KERI 서재화 박사는 "베타전지는 전기차처럼 큰 힘을 내는 전지라기보다는, 사람의 접근이 힘든 곳에서 수십 년 동안 정비 없이 아주 작은 전력을 꾸준히 공급하는 초장수명 전원"이라고 밝히며, "평소에는 극도로 적은 전력만 쓰며 에너지를 모았다가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국방 무인 감시 센서나 우주, 심해의 비상 신호기(Beacon)를 50년 이상 스스로 작동하게 만드는 핵심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국립경국대학교 윤영준 교수는 "이번 성과는 단순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이나 기초 연구 수준을 넘어, 실제 소자의 제작·측정·시제품 실증은 물론, AI 설계 예측까지 완성한 국내 최고 수준의 사례"라고 덧붙였다.
연구팀은 이번에 확보한 베타전지 제조 기술과 측정 기반을 바탕으로, 관련 특허 출원을 마쳤다. 향후 우주항공, 방위산업, 원전 및 방사선 안전 감시, 원격 센서 분야의 기업들과 적극적으로 협력해 기술이전 및 공동 제품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한편, KERI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이번 연구는 KERI 기본사업인 '차세대 우주 탐사용 SiC 반도체 베타 전지 소자 개발' 과제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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